-
군대에 있을 때 우리 집은 목동에서 신도림으로 이사를 했다.
휴가때 집을 찾아가는 데에 꽤나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전에 살았던 목동 14단지와는 달리 비교적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깔끔하고 조경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주변에 간단하게 먹을 것이 없고 피씨방이나 포차 같은 사람냄새 나는 장소가 없는 것은 아쉽다.밤에 산책을 하는 때에도 난 정해진 길로만 다니기 때문에
아직 이 동네, 하다못해 이 아파트 단지에 국한해서도 익숙하지 않다.
이따금 담배 한대 피면서 편의점에 갈 때는 영락없는 아저씨 패션
티 + 입고 있던 바지 + 슬리퍼에 블레이져 하나 걸친 패션으로 문을 나서는데
요전에 어머니와 아파트 주변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러 낮에 나간 적이 있었다.
영락없는 아저씨 패션으로 낮의 뜨거운 햇볕에 짜증섞인 얼굴로 어머니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까망이의 구역에서 까망이에게 먹이를 주려고 할 무렵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강아지를 한마리 데리고 길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아가씨는 까망이를 보고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이내 강아지가 내 다리쪽으로 와서 맴돌자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사실 난 그때 매우 짜증났었다.
고양이는 개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 여자의 강아지 때문에 까망이가 먹이를 먹던 것을 멈추고 경계태세를 풀지 않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 여자한테 저리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 다리를 무척 좋아하는 그 강아지에게 약간의 관심을 쏟아주던 척을 했던게다.
아가씨는 강아지가 내 다리를 맴돌며 냄새를 맡고 다리를 올라타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를 말리기는 커녕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강아지에게 말을 거는 것을 반복하면서
마치 내가 무슨 반응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었다.
내 신경은 오로지 까망이가 자신의 사료를 먹는 것에만 쏠려있었던 참에
까망이가 강아지를 무서워해 털을 곤두세우는 그 상황은 매우 짜증스러웠다.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아가씨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ㅋㅋㅋㅋㅋ써놓고 보니 너무 부끄럽지만 그 느낌이란게 있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그것이 맞다고 한다면
20대 중반인 내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상황이 사뭇 씁쓸하기도 한 것 같다.
근데 뭐, 내가 가릴 처진가.
여인은 해를 거듭할 수록 매력을 누적시키는 법이다.
파릇파릇한 연애가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주 안정적이고, 아주 침잠되어있다.사족을 붙이건데, 내가 그 아가씨에게 관심이 가지 않던건
분명 그 아가씨가 그닥 매력이 없어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