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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휴가 때는 술을 몇번 마셨지만 전역 후에는 한번도 마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저녁 약속을 잡다가 간만에 모이는 자리니만큼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비도 오는 만큼 오늘은 막걸리에 전이다! 라는 친구 여자애의 말에 우리는 빈대떡집으로 향했다.
난 재수없게도 하스에 우산이 동난 덕에 비를 맞으며 약속 장소에 갔다.
뭐 사실 비를 맞는 건 싫어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면 또 신경쓰지 않는 게 나다.
비 맞은 강아지의 행색을 하고 빈대떡집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며 전을 먹으니 옛날 술을 마시던 그 느낌이 상기되기도 하고,
내가, 우리가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_;
그때는 그렇게 술을 마시곤 했는데... 역시 담배는 술과 정말 잘 어울린다.
하여간 그러나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아직 10년은 남았단 말이다.
섹시한 자태를 기필코 그때까지 유지하리라.
판을 벌릴 '수'도 있었으나 간단히 정리하고 일찍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그리고 잠을 좀 자야하긴 하는 것 같다.
매일 두시간, 세시간 이렇게 자다보니 잠이 한번 쏟아지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그러나 밤에 뜬 눈으로 고요함을 즐기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는 더 고민해볼 요량이다.비가 내리는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시선이 앙상한 나무에 꽂혔다.
이젠 날씨가 풀려 여지없는 봄이건만, 아직 그 나무들에는 새싹이 보이지 않고 앙상한 뼈마디만 남아있었다.
아직 나무들의 봄은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다.오늘 우리 뭐 먹을까, 뭘 할까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거나라도 좋아! 난 무엇이든 다 좋아하거든'으로 대답하는
그런 행위를 하는 연인들을 보고 난 그들을 의지박약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부류 중 한명이었고 어쩌면 먼훗날까지도 그럴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있다.난 정말 의지박약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는 하다.
나 역시 하고 싶은 특별한 것이 있고, 먹고 싶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내 의견을 주장할 만큼 난 까다롭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실제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극구 고집해야 할 것은 틀림없이 있다.
그렇지만 내 기준에서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은 것에 조차 하나하나 걸고 넘어진다면
삶은 너무나도 고달프고, 귀찮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그렇기에 난 의지박약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다.
단지 꼭 해야할 것에 대한 기준이 보다 넓을 뿐이지.내가 항상 가슴 속 어딘가에서 이별에 당당할 수 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머리 속에 가득 찬 생각, 바로 갈 사람은 가라는 생각 때문인 것만 같다.
어쩌면 그러기에 난 정말 불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난 사랑을 너무나도 신봉한다거나
혹은 그 기준을 너무나도 높게 잡은 나머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거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주변에는 가끔 한 쪽이 다른 쪽을 너무나도 사랑한 사람들이 있다.
떠나버린 다른 쪽을 잊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도 불사한 사람들.
분명 그 사람의 인생은 한 사람 때문에 완전히 일그러져 버렸고,
또 다른 쪽 역시 심적으로 무척이나 고생을 겪었겠지만
그럼에도 난 그 사람이 부러웠다.생을 걸 수 있는 사랑...
극한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그런 것만이 진정한 사랑으로 보이는 게다.적기가,
"비겁한 자야, 갈테면 가라"
소설,
"껍데기는 가라"이름 뿐인 사랑 혹은 아직 떨쳐내지 못한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