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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첫 밤샘 / 자살자를 위한 공간일상/2015 2015. 4. 28. 09:58
이번 학기의 초라한 첫 밤샘이다.
반은 끄적끄적 모델을 만들고 펜대를 굴리고 반은 졸았다.
이번 학기는 유독 설계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안났는데
그 이유는 두세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수님에게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이 있겠다.
여하튼 자체적으로 3주의 방학을 가졌던 만큼 이제는 신경을 써야겠지.저번 학기를 마무리할 때 즈음 타의적 자살자, 자의적 자살자를 위한 건축적인 공간을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었다.(재밌겠다는 표현은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Interesting과 동일한 의미이다.)
그 생각을 방학 때 한번 진행해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방학 때엔 쉬느라 바빴다.
타의적 자살자는 죄수라고 생각했는데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결국 사형대에 올라가 자신의 생을 마무리 짓는 현상에 몸을 맡기는 것을 난 자살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비록 그 인과관계에는 자의적인 영향보다 그 외적인 요인이 많겠지만 그것을 타살 보다 자살이라고 칭하고 '싶었던' 것은 약간의 감정적인 이유에서 기인한 결정이었다.자의적 자살자는 어떠한 사회적, 구조적인 이유가 아닌 개인적인 이유에 의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를 칭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사람이 있었다.
공개된 공간에서 그리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따금 난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이런 건 아니었을까 생각에 잠기는 때가 있다.스스로의 죽음에 직면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에 걸맞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 감정, 기억에서 이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기말 마감에 쫓기며 문득 하기엔 굉장히 적합한 생각이었다. 생각해보자면.
타인의 손에 자신의 죽음을 맡기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죄수가 자신의 Cell에서 나와 일련의 공간변화의 프로세스를 따르고 감정적인 시퀸스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행동이
사실은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표면적 보금자리에서 이탈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들에게 스스로를 해하려는 행위를 비판하고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초라한 인간이라 만약 그게 내 주변의 일이었다면 그 사람을 잃지 않도록, 혹은 '도움'을 주어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그래서 너를 보존한다는 가면을 씌운 나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행동을 하겠지.
실제 그것이 내가 했던 실패의 행동이었고, 순간의 감정은 내 자신의 입장에서는 진실된 감정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이니까.
불특정 다수의 자살을 앞둔 이들에게 제공하는 마무리 공간.
그렇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뭐 대충 여기까지 작년에 생각을 했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생각을 더 해보고 싶다.
일단은 밥을 먹고 수업을 들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