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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벽한 타인
    일상성 2012. 4. 27. 19:59

    평소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나였는데,
    요즘은 매일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하고 열람실에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주변의 완벽한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 완벽한 타인이라는 말의 뜻은 말그대로 완벽한 타인이다.
    그 사람과 나의 접점은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 이외에는 없고,
    설령 있다해도 내가 인지하지 못할 때 이 완벽한 타인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어떤 사람은 항상 걸어가면서 주변 사람을 쳐다보곤 했는데,
    이해할 수 없었던 내가 물어봤을 때 그 사람은 "재밌잖아"라며 일축하곤 했었다.
    과연 이 행위는 재미 있는 것인가.

    지금 이 공간에는 대략 80명의 남자와 40명의 여자가 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르게 생겼고, 다른 키와 다른 목소리를 갖고 있고, 다른 공부습관을 행하고 있으며, 다른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 정도 특징이 내가 이들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다.
    열람실을 오고 가면서 슬쩍 슬쩍 지나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의식적으로 눈길을 피하곤 있지만 그렇다고 관심을 아예 쏟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 사람의 옷을 보며 그 색감과 몸매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내 발자국 소리 역시 저렇게 크게 들리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지나칠 때 나는 냄새로 그 사람이 쓰는 향수 따위나 담배에 대해 추측해보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종의 놀이이다.
    인지하느냐 마느냐의 수준의 행위겠지만...
    하나 재밌는 것은 이렇게 완벽한 타인이 섞여있는 한 공간, 한 시간에서
    그들로 인해 외로움이 어느 정도는 채워진다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외로움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운 사람에게서 서로 충족하는 소통한다는 느낌의 감정으로 해소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다수의 완벽한 타인들에게서도 어느 정도 외로움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사뭇 환기를 일으켰다.

    시공간적으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항상 시공간적으로 절대적이고 싶고, 초월하고 싶었던 중2병 같은 헛된 바람에 상반되게
    나 역시도 내가 바라마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시공간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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