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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때 같은 반 친구 오지훈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사실 오늘은 기분이 좀 안좋다. 뭔가 안좋은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 다운된 것도 아니다.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면서 혼잣말로 욕을 했다. 작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의 피드백을 처음 받았는데 생각보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많다. 자존심 상한다. 난 잘해야만 하는데. 당분간 야근 계속 하면서 익혀야겠다. 난 못할 수가 없다.
욕심을 버리거나 노력을 하거나 쉽지 않은 문제다
오랜만에 마신 술을 마셨더니 목이 타 잠이 깼다. 퇴사 기념 윤기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친구들 중엔 자본주의적 자유를 위해 가장 노력하고 결과를 일구어온 친구다. 가족, 미래의 가족을 위해서 자산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것을 어느때보다 요새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아마 갈수록 더 할테지. 서른셋, 전반전은 지났다는 생각을 한다.
내일은 새로운 직장의 첫 출근이다. 2021년은 삶의 커다란 일들이 있었고 나름 해결도 잘 된 해였다. 그래, 많은 일이라기보단 커다란 일들이었다. 항상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나는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그래도 페이스를 다소 맞춘 느낌이다. 앞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생활, 그 속에서의 경제 상황은 격변을 겪을 것이다. 밀려나지 않으려면 기를 쓰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버텨내야 할 것이다.
오늘부로 회사를 나왔다. 서른부터 서른셋까지. 인턴기간까지 따지면 3년 6개월 간 다닌 회사를 뒤로 했다. 아주 자세하게 뭔가를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복잡하고 아직 정리가 안됐다. 참 신기하지.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가슴을 쥐어짜듯이 답답했는데.
시대는 너무 노골적으로 변했다. 사람을 만나고, 그리며, 사랑하고, 꿈꾸는 일련의 과정은 더 이상 기준으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관계는 가볍고, 혐오 증오 역시 가볍다. 그래서 난 이 세상에서 관계를 가지는 게 두렵다. 가벼운 것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그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구조화된 경쟁상태가 고착화될 수록,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지고 있다면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희생해서라도 강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패배하는 기분을 거부하는 것 뿐이다.
이직처와 입사 테스트 일정을 잡았다. 슬슬 지금 회사의 인수인계서도 작성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아직 일은 많다. 요새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다. 코로나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그냥 하자는 느낌이다. 집 계약을 했다. 이직하면 돈 열심히 모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