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지르는 것
1.
어제는 인터넷 상에서 바이섹슈얼 남성 한명을 알게 되어 간단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외모도 꽤나 준수했다. 꽃미남상이랄까. 평소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에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는 간략히 이랬다.
Stillwell: 일반적으로 바이들이 남자(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뭔가? 물론 양성을 사랑할 수 있는 양성애자니깐 당연하게 매력을 느끼겠지만 이성에게 느끼는 매력과는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다. 혹은 다른 시각이라거나.
그: 여성에게 느끼지 못하는 남성다움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겐 남성/여성 모두 성적대상으로 보인다.
Stillwell: 그 구분이 없다는 말이구나.
그: 그렇다.
Stillwell: 그럴거라 생각은 했다. 일반적인 남녀에 대한 매력의 차이가 그 종류적인 의미에서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건 아닌가보다. 그게 왜 궁금했냐면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왜 좋아하는건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서 그랬다.
그: 왜?
Stillwell: 당연히 여성에게서 호감의 인지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 호감이 왜 생기는지, 그것이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그 느낌이 모호한 것 같다.
그: 아 ㅋㅋㅋ 탐구적인 마인드를 가졌구나.
Stillwell: 아니 뭐... 여튼 이쁜 여자를 보고 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긴 한데, 그렇다면 여성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가진 남성을 보고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고, 여성을 단순히 '이성'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2.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자상하다고 아는 이들이 몇명 있지만 그것은 내가 사람에게 잘해주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사실 이성들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싶어서 그런 의도는 따지고 보면 작은 부분에 속할 것이다. 잘해주는 그 대상을 챙겨주고 싶다는 행위에는 그 사람의 이득이라는 가치와 내가 챙겨줌으로써 얻는 감정이라는 것 두가지가 함께 있으니까. 난 이 두가지 모두가 좋다. 그러나 이 행동이 아주 간혹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었던 듯 하다.
3.
난 사실 사람, 특히 여자 사람과 그렇게 친해지는 편이 아니다. 자칫 수동적으로 보이는 전반적인 나의 태도로 보든, 이성에 대한 모든 욕구가 비교적 적다는 점으로 보든 이성과의 어떠한 관계에서도 나는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그것은 지극히 의도에 의해 행해진 행위이고, 결과 역시 그랬다. 물론 이성인 친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만 약간의 부담감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적인 하나에 대한 열망이 그 근저에 있던 것 같다.
4.
절대적인 하나라, 참 추상적이지 않을 수 없고 모호하지 않을 수 없고 성취불가능해보일 수 밖에 없다. 난 한 사람을 좋아하다가 그 감정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매순간 참된 감정으로 대하다가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이내 실증을 느끼는 그 매너리즘이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 절대적인 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것을 걱정할 새도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인 것이다. 실로 방어적이고 비진취적일 수 밖에 없다. 집착적이고, 현실도피적이다.
5.
물론 내가 지나온 몇명의 여자들도 그 순간에는 절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실패했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어쩌면 나의 그 한사람이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이따금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후회가 밀려올 수 밖에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체해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6.
나는 꿈을 꾸는 것일까.
가끔 이런 생각에 잠긴다. 불가능한 무엇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것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로 일어날 것을 바라는 자신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모두 무섭다. 이로 말미암아보건데 나는 언제나 사랑에 빠져있다. 그것의 대상이 때로는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없는 상태로.
7.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맨날 사랑타령만 하는 대중가요가 구차해보이고 싫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그토록 사랑에 대해 목놓아 노래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가사를 붙이고 다른 노래를 하고 싶었으나 삶을 지배하는 이토록 거대한 힘의 사랑 말고는 붙일 것이 없어 사랑을 노래해야 했는지도.
그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 지금 내 삶에서 사랑의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지만, 언젠가는 내 삶에서 사랑이 가장 큰 의미가 되리라는 것을 알겠다. 바라마지 않는 그것은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것이니까.
만약 그것을 진짜 하게 된다면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자. 난 차라리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