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1

2011년 10월 29일 오후 5시 45분의 일기 점점 해와 해가 저물어간다

Stillwell_KU 2011. 10. 29. 17:45
1. 내 이야기
오늘은 어쩌다가 다른 방 사람들 회식자리에 껴서 목욕도 하고 밥도 얻어먹고 왔는데,
오랜만에 목욕탕에서 사우나도 하고 때도 밀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난 평소 대중목욕탕을 자주 이용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떠한 강제력
즉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우리집에 오신다거나 하는 강제력에 의해서 갔었던 적이 꽤 있었던 편이다.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엄청난 무게의 어른, 그러나 용돈을 주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오시던 날이면 난 대중목욕탕에 가 할아버지 때도 벗겨드리고, 나와선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구어먹곤 했는데,
이에 따라 할아버지는 불편하기는 하나 용돈도 주고 고기도 사주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대학 초년생 까지만 해도 난 어른을 만나는 일을 굉장히 꺼려하곤 했었다.
과거에는 그 까닭이 어른들은 대개 좀 경직되어 있고, 보수적일 거라는 선입견으로,
일단은 진보적인 모습을 갖고 싶어했던 나와 맞지 않고,
또한 이것에 내가 불편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다다라서는 분석이 좀 다르다.

나는 대체로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편에 속한다.
학창시절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그랬고, 우연히 알게되는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할아버지는 물론 친인척의 어른들 역시 나를 귀엽게 여겨주시곤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잘 갖추고 있으며
그 예의와 내 강한 성격을 잘 고려하여 언행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요즘 이것의 본질은
거리감에 따른 처신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예의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그 반대급부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데다가 완전히 잘못된 어른이라면
심하게, 심지어 반말까지도 구사하며 그들의 잘못에 항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한 살 터울인 형, 누나들에게도 완전히 친해지기 전까진 꼬박꼬박 존칭을 쓰는 내 습성상
이것은 사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면서도 또한 충분히 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예상하는 부분이다.

반면 깊든 얕든 안면이 있고, 관계가 있는 어른이라면
결코 일체의 비예의적인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런 경우라면 예의와 내 입장을 적절히 판단하여
상황에 맞게 수위를 조절하여 언행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밀접할 수밖에 없는 어른일 경우,
이를테면 친한 친구의 부모님 같은 경우
나는 오직 예의를 다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에 나를 대하는 시간이 적을 것이고,
그러기에 내 순간의 일면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
작은 내 언행까지도 행여나 어른들의 심기를 건들지나 않을까 조심했고,
내 주의주장은 스스로 묵살한 채 청취하고, 수긍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태초에 강한 성격을 타고나 주의주장이 강한 내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나 또한 그렇다며 거짓 동의를 해야 하는 상황,
그런 걸 나는 당연하게도 견딜 것인데 그것에 커다란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초년생 이후에는 조금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토대는 어른에 대한 절대적인 예의를 지키는 입장이지만
가끔은 넉살좋게 너스레도 떨고 능글맞게 항의도 하면서
'나만의 반항'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새.

이를 인지하고서 나는 밀려오는 쾌감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몇몇 어른들은 나의 바뀐 태도에 짐짓 놀라움을 표현하면서도
이내 그러한 바뀐 나도 인정해주고 이뻐해주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그 새로운 성격은 나름 빛을 발했고 사람들과 원활한 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례적인 나의 '성격의 변화'는 결국 기존의 내 성격을 싫어하는
나의 부분이 만들어낸 '반항'이 아닌가 했다.
비록 코코 아방 샤넬처럼 '이전의 삶이 싫어서 새로이 창조한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기쁨을 느끼는 변화는 그 정도도 충분하다.(기쁨을 느낀다는 기준에 의해서는.)

2. 그 아이 이야기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 아이를 다루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아이가 하루에 얼마나 힘들었든 하루에 1시간 이상의 자유시간을 주면 상태가 양호해진다.